나는 며칠 전 영재(寧齋) 이건창 선생을 우연하게 스쳐지나갔다.
그 분이 명문장가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너무나 반가웠다.
영재 선생과 그 조우하는 상황은 이러했다.
“매천 황현선생이 일찍이 압록강을 가는 길(鴨江途中)에서 라는 시를 지었다.
微有天風驢更快(미유천풍려경쾌) : 산들바람 불어오니 나귀 걸음이 더욱 빨라지고
一經春雨鳥皆姸(일경춘우조개연) : 봄비가 오고나자 새가 모두 어여쁘다.
친구인 김택영과 이건창이 이 시를 보았다.
두 사람은 대뜸 두 번째 구절의 여섯 번째 글자인 모두 ‘개(皆)자’를 더할 ‘증(增)자’로 고쳐놓았다.
한 글자를 고치고 나니까 시의 듯이 이렇게 바뀌었다.
산들바람 불어오니 나귀 걸음이 더욱 빨라지고 : 微有天風驢更快(미유천풍려경쾌)
봄비가 오고 나자 새가 훨씬 어여쁘다 : 一經春雨鳥增姸(일경춘우조증연)
나귀 걸음이 빨라졌다고 했으니, 새도 훨씬 예뻐졌다고 해야 옳다.
그냥 새가 모두 예쁘다고만 하면 왠지 힘이 없어 보인다. 하나는 움직임이 있는데 하나는 움직임이 없기 때문이다. 한 글자를 고치자 시의 분위기가 훨씬 살아났다.
황현도 웃으면서 친구의 말을 따라 한 글자를 고쳤다.“
정민 선생께서 들려주는 “한시(漢詩 )이야기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책을 읽다가 책 속의 내용으로 이 건창 선생을 스치는 듯 만나게 된 것인데 왜 그리도 반가웠던지 ...... 끝
이건창(李建昌 1832-1898) : 조선 후기의 문인 호는 영재. 본관은 전주이고 강화인이다.
고종 때 15세에의 젊은 나이로 문과에 급제했고 23세 때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가서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조선 말의 뛰어난 문장가로 김택영과 강 위 등이 모두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문집으로 <명미당집>과 <당의통략>이 있다.
김택영(金澤榮 1850-1927):구한말의 문장가. 호는 창강. 개성사람이다. 젊어서부터 글을 잘 짓는다는 이름이 있었다.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망한 나라에서 살 수 없다며 청나라로 망명하였다. 청나라에서 그 곳의 학자. 문인들과 교유하면서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많이 소개하였다. 저서에<한국소사>. 와<한시경>이 유명하고 문지에<소호당집>이 있다.
황현(黃玹 1855-1910): 구한말의 시인. 호는 매천(梅泉).본관은 장수이다. 어려서부터 시에 능하다는 소문이 있었고
1885년 생원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어지러운 시국을 보고 벼슬을 단념한 뒤 다시는 서울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1910년 을사늑약으로 나라가 망하자 유언 시를 남가고 약을 먹고 순절하였다.
시문집으로는 <매천집>이 있고, 구한말 야사를 기록한 <매천야록>이 있다
udw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