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황 (獅子黃, 사자와 같은 황색마黃色馬)
강화(江華) 매도(煤島, 현 석모도)에서 생산되었으며, 조선 태조 이성계가 지리산에서 왜구를 평정할 때 타던 말.

사자황(獅子黃) 작가미상, 비단에 채색, 42cm*35cm, 1705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팔준도(八駿圖)> 중
獅子黃 黃色烏觜 産於江華之煤島 智異山平倭時御
[1]
조선 태조 이성계에게는 여덟 마리의 준마가 있었다.
'황운곡'은 여진산으로, 납씨를 몰아내고 홍건족을 평정할 때에 탔던 말로 화살 두 개를 맞았었다. '유린청'은 함흥산으로 오라를 잡고 해주와 운봉에서 싸울 때 탔던 말인데, 화살 세 개를 맞았으며 31세에 죽어 석조를 만들어 묻어 주었다. '추풍오'는 여진산이며 화살 한 개를 맞았고, '발뢰자'는 안변산이다. '용등자'는 단천산인데 해주에서 홰적을 평정할 때에 탔고 화살 한 개를 맞았다. '응상백'은 제주산으로 압록강에서 회군할 때 탔던 말이다. '사자황'은 강화 매도산으로 지리산에서 왜적을 평정할 때에 탔었다. 그리고 '현표'는 함흥산인데 토아동에서 왜적을 무찌를 때에 탔던 말이다.
세종 임금 때, 안견을 시켜 이 팔준마의 그림을 그리게 하고, 집현전의 여러 신하를 시켜 찬(贊)을 짓게 하여 후세에 전하게 했다.
[2]
팔준도(八駿圖)는 말을 소재로 한 그림 중에 여덟 필의 준마(駿馬)를 그린 것으로 이 그림은 조선초 태조(太祖)가 조선을 건국할 당시 공을 세운 여덟마리의 준마(駿馬)를 그리게 한 태조팔준도(太祖八駿圖)에 근거하고 있다. 18세기 숙종(肅宗)대에 나라의 기틀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공훈을 세운 말을 기리고 이를 후대에 물려주려는 뜻에서 팔준도를 다시 제작하였는데, 이 그림으로 추정된다. 화면 오른쪽에는 말 이름과 함께 빛깔, 출산지, 공로 등의 내용이 적혀있으며, 다른 화면에는『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 실린 주석(註釋) 및 찬(讚)이 기록되어 있다.
[3] 해동잡록
사자황(獅子黃) 사자와 같은 황마(黃馬)이다. 강화(江華) 매도(煤島) 소산으로 지리산에서 왜구를 평정할 때 타던 말. 누른색이며 주둥이는 검다. 찬에 이르기를, [3척의 칼로 위엄을 떨쳐서 (三尺威奮) / 한 번 성을 냄으로 성공을 했나니 (一怒而成) / 지리산 고개에 (頭流山峙) / 누런 사자가 유명했었다 (黃獅有名)] 하였다.
[4] 성삼문(成三問)의 팔준도명 병서(八駿圖銘 幷序)
사자황이여, 그칠 새 없이 타고 다니니 / 獅子黃行無疆
승상은 밝고 장군은 강하네 / 丞相明將軍强
천일이 기운 모아 상서를 바치어 / 天一翕聚呈厥祥
용매가 바다 속에서 나타났네 / 龍媒闖然海之央
높고 높은 두류산에 도적떼 한창인데 / 頭流巖巖賊氣張
번쩍이는 칼을 따라 한 번 뛰어 용을 썼네 / 一超奮武隨劒光
적의 머리 산같이 베어 놓으니 / 坐見獻級如崇岡
사자황이여, 지혜가 매우 훌륭하네 / 獅子黃思斯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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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동각잡기東閣雜記] 上 본조선원보록(本朝璿源寶錄)
[知退堂集]卷六 東閣雜記乾 이정형(李廷馨)
○ 태조가 전쟁할 때에 탄 준마(駿馬)가 여덟이었다. 「횡운골(橫雲?)」이라 이름한 것이 여진산(女眞産)으로, 납씨(納氏)를 쫓아내고 홍건적(紅巾賊)을 평정할 때에 탔던 것인데, 화살 두개를 맞았으며, 「유린청(遊麟靑)」이라 이름한 것은 함흥산으로, 오라(兀刺)를 잡고, 해주에서 싸우고, 운봉에서 승전할 때에 탔던 것인데, 화살 세 개를 맞았으며, 31세에 죽었는데, 석조(石槽)를 만들어 묻어 주었다. 「추풍오(追風烏)」는 여진산으로 화살 한 개를 맞았고, 「발뢰자(發雷?)」는 안변산이요, 「용등자(龍騰紫)」는 단천산인데, 해주에서 왜적을 평정할 때에 탔던 것인데, 화살 한 개를 맞았으며, 「응상백(凝霜白)」은 제주산(濟州産)으로 압록강에서 회군(回軍)할 때에 탔던 것이며, 「사자황(獅子黃)」은 강화매도산(江華煤島産)으로 지리산에서 왜적을 평정할 때에 탔던 것이며, 「현표(玄豹)」는 함흥산으로, 토아동(兎兒洞)에서 왜적을 평정할 때에 탔던 것이다. 세종 때에 호군(護軍) 안견(安堅)으로 하여금 그 팔준마(八駿馬)의 형상을 그리게 하고 집현전(集賢殿)의 여러 신하들로 하여금 찬(贊)을 지어 후세에 전하게 하였다.
太祖征戰時所御駿馬八。曰橫雲?。?女眞走納氏。平紅。賊時御。中二箭。曰遊麟靑。?咸興。取兀剌戰海州。捷雲峰時御。中三箭。齒三十一而死。作石槽埋之。曰追風烏。?女眞。征胡拔都時御。中一箭。曰發電?。?安邊長湍。從獵時御。曰龍騰紫。?端川。海州平倭時御。中一箭。曰凝霜白。?濟州。鴨綠回軍時御。曰獅子黃。?江華煤島。智異山平倭時御。曰玄豹。産咸興?兒洞。平倭時御。世宗朝。命護軍安堅。圖其形。集賢殿諸臣。各製其贊。以傳于後。
## 동문선 제50권 명(銘) 팔준도명 병서(八駿圖銘 幷序)
[成謹甫先生集] 卷二 성삼문(成三問)
팔준도명 병서(八駿圖銘 幷序)
모진 추위 뒤에는 반드시 따뜻한 봄이 있고, 격동하는 물굽이 아래는 반드시 깊은 못이 있나니, 치란(治亂)이 서로 잇대는 것은 고금이 동일하다. 옛날 고려 운수가 강하지 못하여 천명(天命)이 떠나 버렸으니, 위아래가 차서를 잃어 시랑(豺狼)이 득세하게 되고 문무(文武)가 향락만을 삼아 난리가 일어나고 말았으며, 어리석은 백성들은 도탄(塗炭)에 허덕인다. 진(秦) 나라의 사슴을 잃었으니, 조박(操搏)의 업이 다 되었는데 우(禹)가 아니면 우리는 고기가 되었다는 격이라 제안(濟安)의 책임이 어디로 돌아가리오. 오직 우리 태조 강헌(康獻)ㆍ지인(至仁)ㆍ계운(啓運)ㆍ성문(聖文)ㆍ신무(神武) 대왕은 천년의 기회에 응하시고 상성(上聖)의 자품을 지니셨으며, 실로 하늘이 내신 덕이시라 귀신과 더불어 꾀를 하시와 한 번 성냄을 떨치어 요승(妖僧)을 몰아내니, 사직이 빈 터가 되지 아니하였고, 만전의 계획을 짜내서, 홍건적(紅巾賊)을 무찌르니, 종묘(宗廟)는 예와 같으며, 납씨(納氏)를 몰아내고 올자(兀刺)를 쳐서 태산으로 알[卵]을 누르기보다 쉽고, 지리산(智異山)에서 싸우고 운봉(雲峯)에선 이겼으니, 거센 바람이 가랑잎 하나 쓸어내기 어려우랴. 토동(兎洞)에서 말안장을 끌러 놓으니, 해로운 기운은 해전(海?)에서 사라졌고 압록강에서 고삐를 돌리니 대의는 해나 별보다 빛났으며, 수십 회 전장(戰場)을 출입하는 동안에 한 고조(漢高祖)처럼 발을 몇 번이나 문질렀던고 천 만리를 발섭(跋涉)하노라니, 촉 선주(蜀先主)같이 볼기 살이 빠진 적이 오래였으며, 남쪽을 치면 북쪽이 원망하고, 큰 무리는 두려워하며 작은 무리는 기다리고 있으니, 가는 곳마다 서로 경사로 여기며, 능히 그 공을 이를 줄 알았었네. 5백 년에 성인이 나시니 칠덕(七德)은 이미 5백 년을 가름하였고, 3천 마리의 말에 신물이 나타났으니, 한 마음은 진실로 3천 마리에 협동되네. 달리는 걸음은 법도에 합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사람을 순히 하며, 그리움은 영(營)에 돌아가기에 간절하고 지혜는 희미한 길에 익숙하여 오늘의 액(厄)은 노력을 신빙할 만하니, 내 채찍을 가르키면 바로 곧 건널 수 있으리. 사생(死生)의 의탁이 가벼운 것 아니기에 문ㆍ무의 공이 더욱 빛나며, 방방(彭彭)은 주원(周原)에 병행할 만하고 경경(??)은 노모(魯牡)에 어찌 뒤떨어지랴, 태일(太一)이 정기를 모으매 천보(天寶)의 아끼지 아니함을 알겠고, 구오(九五)의 때를 얻으니 곤정(坤貞)에 응부하여 다함이 없으며, 활과 화살을 건 활집에 거두어 들이고 신음하는 소리가 노래로 변하게 하며, 남쪽 오랑캐가 제항(梯航)으로 길을 통하고 북쪽 풍속이 관대(冠帶)를 알게 되었으며, 만세의 수의(垂衣)를 열었으니, 하늘의 상서가 오늘에 이르고, 삼한을 안정하여 편히 쉬게 하였으니, “임금의 힘이 무엇이 나에게 있으리오.”라는 말과 같네 이것이 비록 신무(神武)의 사벌(駟伐)하신 위엄이나 또한 권기(權奇)의 내달린 효력을 얻은 것이니, 물(物)이 어찌 짐작이 없으리오, 대개 때를 기다렸던 것이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우리 주상 전하는 하늘의 총명을 법받으시고 조상의 대명(大明)을 이으시고, 크고 어려운 책임을 담당하오매, 뒤를 열어 이지러짐이 없게 하기를 생각하시고, 즉위(卽位)의 예를 행하오매 차례를 계승하여 길이 잊지 않을 것을 맹서하시며, 우러러 치실(?室)의 노고를 생각하시고, 매양 갱장(羹墻)의 사모가 간절하시며, “제왕의 운(運)을 일으키는 것은 단독으로 성공하기 어렵고 인물의 협력이 있은 연후에 일이 이뤄진다.”고 하셨으므로, 대려(帶礪)의 맹서가 이미 깊고 개유(盖?)의 은혜가 또한 융숭하였다. 그러므로 여러 공(公)은 일찍이 운대(雲臺)의 초상이 있었거니와, 팔준(八駿)은 아직도 소릉(昭陵)의 열(列)에 없었으매, 이에 윤음을 내리어, 회사(繪事)를 거행하니 호두(虎頭)는 방박(磅?)하여 옷을 풀어 놓고 용함(龍?)은 서로 밀려 바다를 떠나며, 등골에 붉은 즙(汁)이 흐르니, 한로(汗勞)의 태도가 완연하고, 화살이 흰 살에 박혔으니, 전쟁을 치르고도 늠름하네. 솜씨에 따라서는 사골(死骨)도 일으킬 수 있고 눈에 접하면 고삐를 단속하게 한다. 다행히 후손이 한가할 때 관람한다면 부귀가 마상(馬上)에서 얻은 것을 알 것이며, 곂 방석 위에 앉아서도 바람에 빗질하고 비에 목욕하던 때를 상상할 것이요, 팔진미(八珍味)를 앞에 벌려놓아도 콩죽 먹고 보리밥 먹던 날을 생각할 것이매, 반우(盤盂)의 잠계(箴戒)에 비하고 산수의 그림과 바꾸지 말면 대동의 팔준도 한 폭이 마땅히 저 《시경(詩經)》의 빈풍(?風)의 칠월 편(七月篇)과 더불어 같이 갈 것이니, 대단히 아름다운 일이다. 나는 새가 치유(??)하고 충돌한 쥐가 패어(敗御)하며 주 목왕(周穆王)이 서왕모(西王母)를 잔치하매 수레바퀴 자국이 온 누리를 두르고, 한나라가 이사(二師)를 포위하매 비만(飛輓)이 국외에 달하였으며, 말이 많다고 믿었으나 진(晉) 나라는 위태하지 않은 것 아니고 사마(駟馬)가 천 필이 되어도 제(齊) 나라 역시 칭할 것 없으며, 혹은 뜻을 상실하고 덕을 더럽히며, 혹은 백성을 괴롭히고 나라를 병들게 하니 이는 다 제왕의 법칙을 황폐(荒廢)한 것이라 한갓 뒷날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아, 당(唐) 나라에서는 충성하고 수(隋) 나라에서는 아첨하는 것을 보면 사람도 오히려 그렇거늘 쓰면 범이 되고 안 쓰면 쥐가 된다 해서 물(物)을 어찌 족히 괴이 여기리오. 뒷임금이 그림을 보면, 황조(皇祖)를 법받아 업을 이을 것을 생각하고 위에 말한 몇 임금을 보고 경계를 삼아 하루 가고 이틀 가도 이 마음을 잊지 않으면 실로 우리 조선 만세의 복일 것입니다. 신은 듣자오니, 선조를 현양(顯揚)하는 것은 효도의 극치요 후세에 명시하는 것은 교화의 대도라 하옵니다. 착한 일이 있어도 알지 못하면, 밝지 못한 것이옵고, 알고서도 전하지 아니하면 어질지 못한 것이옵니다. 엎드려 뵈오니 전하는 공경을 다하여 조상을 높이시고, 은혜를 미루어 물(物)에 미치시며, 조상의 칭하신 바를 좋게 여기시고 또 조상의 하신 바를 좋게 여기시와 오늘날 사모하는 마음을 부치시고 한없는 아름다움을 이뤘으나 또한 한없는 근심을 놓지 아니하여 후손의 지켜가는 법규를 삼으시며, 효도와 공경과 함께 지극하시고 밝음과 어지심은 아울러 구비하였으니, 가송(歌頌)의 작이 정히 때를 만났을진대 찬양하는 말씀을 어찌 하지 않을 수 있사옵니까. 신은 기술이 검려(黔驢)와 같이 짧고 학은 노어(魯魚)의 잘못된 것을 밝힐 수 없사오며 연대(燕臺)의 어진이를 구함에 있어서는 천리의 재주가 아니어서 부끄럽사온데 한문(漢門)의 대조(待詔)는 그릇되게 일고의 값을 올렸으나 노둔(駑鈍)하여 비록 먼 곳을 갈 자격은 없사옵고, 닭의 울음과 개의 짖음이라도 제 기능을 다할 마음이 있사오며, 하물며 성공(聖功)을 포장하는 것은 직분상 당연히 할 일이옵기로 감히 우견을 다하여 효사(孝思)를 받들어 기술하오며, 말의 덕을 만에 하나나마 노래하여 큰 아름다움을 장래에 파전하려 하와 삼가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명을 올리는 것이옵니다.
횡운골이여, 익숙하고 건장하니 / 橫雲?閑且佶
만리의 한혈이요 천금의 골이로세 / 萬里血千金骨
쏜살같이 약작을 넘어 사라지는 듯이 하니 / 驟度略?滅若沒
네 굽을 들고 뛰어 한 번도 고꾸라진 적 없네 / 超攄四足無一蹶
우리 임금 비바람 속에 분망하시던 날 / 我祖辛勤沐以櫛
몇 번이나 함께 위태한 고비를 넘겼던가 / 乘危幾時同倉卒
우리의 큰 터전을 이뤄 오늘이 있으니 / 基我丕丕有今日
횡운골이여! 공이 제일이로세 / 橫雲?功第一
유린청이여, 등에 봉이 솟았으니 / 游麟靑體峯生
땅에 속하는 종류요 동의 영이로세 / 地之類銅之英
진진한 인이요 성명의 상서라 / 振振之仁瑞聖明
해가 오랠수록 기술은 익숙하네 / 齒歷延長藝老成
완악함을 네 번 넘어뜨려 나라가 편안하니 / 四?艱頑邦以寧
삼십일사에 그 영이 빛났구려 / 三十一祀耀厥靈
죽어서도 석조에 웅장한 이름 남겼느니 / 死有石槽留雄名
유린청이여, 덕을 어떻게 칭할 건가 / 游麟靑德焉稱
추풍오여, 되의 땅에서 들어오니 / 追風烏來自胡
국중의 보배요 천하에 짝이 없네 / 域中寶天下無
바람타고 해를 쫓아 허공에 오르니 / 乘聲逐日騰半虛
단번에 임금 사랑을 입었구려 / 一見特荷乾心紆
험난한 곳을 사람과 드나들어 / 入險濟難與人俱
신무를 도와 나라를 평정했네 / 贊揚神武淸坤隅
소릉 백제의 공이 서로 비슷하니 / 昭陵白帝功爲徒
추풍오여, 도참에 응해 났구려 / 追風烏生應圖
발전자여, 용이냔 말이냐 / 發電?龍邪馬
용감한 그 재주 짝이 실로 없네 / 藝之武匹也寡
제 그림자 돌아 보고 소리 치며 고개드니 / 顧影長鳴?一?
기북의 만 필이 모두 다 이 아래로세 / 冀北萬匹材盡下
치달림이 법에 맞아 빗나가지 않으니 / 馳驟合矩無偏頗
채찍 하나 휘둘러 사직을 안전했네 / 一鞭攸指定稷社
우리 나라 억만년을 길이 편안하리니 / 大東億載長帖妥
발전자여 참으로 말이로다 / 發電???者
용등자여, 천마의 새끼인지라 / 龍騰紫天馬子
번개 같은 눈동자에 통같은 귀로세 / 散電睛揷?耳
월굴의 정을 받고 하수 기운 뭉치어 / 稟靈月窟河聚氣
우리 진룡을 내니, 변화는 귀신 같네 / ?我眞龍化若鬼
전쟁에 다다르면 생사를 의탁하여 / 久矣臨陣托生死
넌즈시 진흙땅을 한 번 뛰어 넘었다네 / 容與一?泥?地
적려가 단수를 건넌 것과 공이 같으니 / 功符的盧躍檀水
용등자여, 만년을 빛이 나리 / 龍騰紫光萬祀
응상백이여, 힘으로만 칭할 것 아니라 / 凝霜白匪稱力
크고 강하고 또 슬기롭네 / 大有?剛且淑
압록강 물 넘실넘실 기슭은 천척인데 / 鴨水湯湯岸千尺
흰 화살 번쩍번쩍 붉은 활과 함께 빛이 나네 / 白羽???弓赫
밤에 비추는 광경이 휘황창 밝으니 / 照夜光景輝相燭
줄지은 깃발이 발굽을 따라가네 / 央央義?隨?足
단번에 삼한을 고통에서 구제하니 / 一回三韓骨而肉
응상백이여 네가 고맙다 / 凝霜白而無?
사자황이여, 그칠 새 없이 다니니 / 獅子黃行無疆
승상은 밝고 장군은 강하네 / 丞相明將軍强
천일이 기운 모아 상서를 바치어 / 天一翕聚呈厥祥
용매가 바다 속에 나타났네 / 龍媒闖然海之央
높고 높은 두류산에 도적떼 한창인데 / 頭流巖巖賊氣張
번쩍이는 칼을 따라 한 번 뛰어 용을 썼네 / 一超奮武隨劒光
적의 머리 산같이 베어 놓으니 / 坐見獻級如崇岡
사자황이여, 지혜가 매우 훌륭하네 / 獅子黃思斯臧
현표여, 용감하고 사나워 / 維玄豹?以?
적수가 없는지라 어느 것에 비교하리 / 久無敵誰與校
방성의 정기가 잠저에 비추더니 / 房星?精潛邸耀
드디어 천리마를 내었구려 / 胚胎逸蹄殊??
토동에서 전쟁을 마치고 큰 공을 세웠거니 / 解鞍?洞輸奇?
섬오랑캐 배 한 척도 돌아가질 못했네 / 島夷百?無回櫂
단청의 그림도 똑같이 늠름하니 / ?上丹靑凜惟肖
검은 표범인가 교교하구려 / 玄之豹之??
##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 제1권 태조조 고사본말(太祖朝故事本末) 잠룡 때 일
○ 태조가 탄 준마가 여덟 마리가 있었다. 횡운골(橫雲?)은 여진에서 났는데, 납씨(納氏)를 패주시키고 홍건적을 평정할 때에 탔다. 화살 둘을 맞았다. 유린청(遊麟靑)은 함흥에서 났는데, 우라를 점령하고 해주에서 싸우며 운봉에서 승전할 때에 탔다. 화살 셋을 맞았다. 31살에 죽었는데, 석조(石槽)에 넣어서 묻었다. 추풍오(追風烏)는 여진에서 났으며, 화살 한 개를 맞았다. 발전자(發電?)는 안변에서 났다. 용등자(龍騰紫)는 단천(端川)에서 났는데, 해주에서 왜를 평정할 때에 탔으며, 화살 한 개를 맞았다. 응상백(凝霜白)은 제주에서 났는데, 압록강에서 회군할 때에 탔다. 사자황(獅子黃)은 강화 매도(煤島)에서 났는데, 지리산에서 왜를 평정할 때에 탔으며, 현표(玄豹)는 함흥에서 났는데, 토아동(?兒洞)에서 왜를 평정할 때에 탔다. 뒤에 세종이 명하여 호군(護軍) 안견(安堅)이 팔준마(八駿馬)의 형상을 그리고, 집현전의 여러 신하들 성삼문(成三問) 등 이 찬(贊)을 지었다. 《동각잡기》 ○ 숙종(肅宗) 을유년(1705)에 명하여 안견이 그린 팔준도를 그대로 모사하여 짧은 축(軸)을 만들고, 그림의 찬(贊)과 서(序)를 어제(御製)하였다.
## 임하필기(林下筆記) 제20권 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
팔준마(八駿馬)
태조(太祖)가 나라를 열었을 때 타던 준마(駿馬)가 여덟 마리였다. 첫째는 횡운골(橫雲?)로, 여진(女眞)에서 났는데 납씨(納氏)를 패주(敗走)시키고 홍적(紅賊)을 평정할 때 타던 것이다. 둘째는 유린청(游麟靑)으로, 함흥(咸興)에서 났는데 올자(兀刺)를 취하고 해주(海州)에서 싸우고 운봉(雲峯)에서 이길 때 타던 것이다. 셋째는 추풍오(追風烏)로, 여진에서 났다. 넷째는 발전자(發電?)로, 안변(安邊)에서 났는데 장단(長湍)에서 사냥할 때 타던 것이다. 다섯째는 용등자(龍騰紫)로, 단천(端川)에서 났는데 해주에서 왜적을 평정할 때 타던 것이다. 여섯째는 응상백(凝霜白)으로, 제주(濟州)에서 났는데 압록강(鴨綠江)에서 회군(回軍)할 때 타던 것이다. 일곱째는 사자황(獅子黃)으로, 강화(江華) 매도(煤島)에서 났는데 지리산(智異山)에서 왜적을 평정할 때 타던 것이다. 여덟째는 현표(玄豹)로, 함흥에서 났는데 토아동(兎兒洞)에서 왜적을 평정할 때 타던 것이다. 세종조(世宗朝)에 호군(護軍) 안견(安堅)에게 명하여 그 형상을 그리게 하고, 집현전 학사 성삼문(成三問) 등에게 그 찬(贊)을 지어 후세에 전하도록 하였다.
## 청장관전서 제61권 앙엽기 8(?葉記八)
팔준마(八駿馬)ㆍ십이준마(十二駿馬)
우리 태조(太祖)가 개국할 때 탔던 준마가 8마리 있었다. 첫째는 횡운골(橫雲?)로 여진(女眞)에서 난 것이요, 둘째는 유린청(遊麟靑)으로 함흥(咸興)에서 난 것이요, 셋째는 추풍오(追風烏)로 여진에서 난 것이요, 넷째는 발전자(發電?)로 안변(安邊)에서 난 것이요, 다섯째는 용등자(龍騰紫)로 단천(端川)에서 난 것이요, 여섯째는 응상백(凝霜白)으로 제주(濟州)에서 난 것이요, 일곱째는 사자황(獅子黃)으로 강화(江華)에서 난 것이요, 여덟째는 현표(玄豹)로 함흥(咸興)에서 난 것이다. 세종(世宗)이 호군(護軍) 안견(安堅)에게 명하여 그 모습을 그리도록 하였는데, 집현전 학사 성삼문(成三問) 등이 찬(贊)을 지었고 숙종도 어제찬(御製贊)을 지었다.
세조 9년(1464)에 글을 내려 왕위에 오르기 전에 몸소 탔던 말 12마리를 당 나라 고사(故事)를 모방하여 그림을 그려 전하라 했다. 첫째는 정세표(靖世驃)요, 둘째는 유하류(流霞?)요, 셋째는 이화려(梨花驪)요, 넷째는 옥영규(玉英?)요, 다섯째는, 능공곡(凌空鵠)이요, 여섯째는 축풍구(逐風駒)요, 일곱째는 섭운리(?雲?)요, 여덟째는 등무표(騰霧豹)요, 아홉째는 질경홍(?驚鴻)이요, 열째는 익비룡(翼飛龍)이요, 열한째는 대방린(戴芳麟)이요, 열두째는 조야기(照夜驥)이다.
靑莊館全書 卷61 ?葉記[八] 八駿十二駿
太祖開國時。所御駿馬有八。一曰橫雲?。産女眞。二曰遊麟靑。産咸興。三曰追風烏。産女眞。四曰發電?。産安邊。五曰龍騰紫。産端川。六曰凝霜白。産濟州。七曰獅子黃。産江華。八曰玄豹。産咸興。世宗命護軍安堅。圖其形。集賢學士成三問等。作贊。肅宗御製贊。世祖九年。書下龍潛時所御馬十二。倣唐家故事。圖而傳之。一曰靖世驃。二曰流霞?。三曰黎花驪。四曰玉英?。五曰凌空鵠。六曰逐風駒。七曰?雲?。八曰騰霧豹。九曰?驚鴻。十曰翼飛龍。十一曰戴芳麟。十二曰照夜驥。
## 해동잡록 1 본조(本朝) 안견(安堅)
○ 팔준마(八駿馬)는 우리 태조(太祖)가 정벌할 때 타던 것으로, 우리 세종(世宗) 때에 호군(護軍) 안견(安堅)에게 명하여 그 형상을 그리고, 집현전의 모든 신하들이 그 찬(贊)을 지어 후세에 전했다. 《동각잡기(東閣雜記)》
첫째, 횡운골(橫雲? 구름을 횡행하는 매) 여진(如眞)의 소산(所産)으로 납합출(納合出)을 쫓아낼 때와 홍건적을 평정할 때 탄 말로서 두 대의 화살을 맞았다. 찬(贊)에 이르기를, [웅장한 자세는 그림에 상응하고 / 雄姿應圖 골격은 무리에서 뛰어났도다 / 駭骨超群 요사한 기운을 다 일소하고 / 掃盡妖? 횡행한 것은 바로 너 횡운이로구나 / 橫爾橫雲] 하였다.
둘째, 유린청(游麟靑 빠른 기린과 같은 청총마) 함흥(咸興) 소산(所産)으로 올랄(兀剌)을 쫓아낼 때와 해주(海州)에서 싸울 때와 운봉(雲峯)에서 승리할 때 탔던 것으로 세 대의 화살을 맞았고, 31년을 기르다가 죽음. 찬에 이르기를 [거룩하다, 이 유린이여 / 偉此游麟 우리 성덕을 상서롭게 하였도다 / 瑞我聖德 나이를 30이나 쌓아 가면서 / 積年三十 위엄을 남북에 떨쳤도다 / 宣威南北] 하였다.
셋째, 추풍오(追風烏 바람을 쫓는 오추마(烏?馬)) 순 검은 까마귀 색깔. 여진산(女眞産)으로 화살 한 대를 맞았다. 찬에 이르기를 [빛깔의 윤택함은 검은 구름 같고 / 色潤玄雲 눈의 빛남음 밝은 별과 같도다 / 眼閃明星 한 채찍에 머리를 들고 달리면 / 一鞭騰? 만리라도 종횡으로 뛰는구나 / 萬里縱橫] 하였다.
넷째, 발전자(發電? 번개와 같이 빠른 적토마(赤兎馬)) 안변(安邊) 소산으로 붉은색 코와 발목은 흰 빛이다. 장단(長湍) 사냥 때 탔었다. 찬에 이르기를 [무리에서 빼어난 말이여 / 逸倫之驥
기미에 대응하기 귀신 같도다 / 應機如神 일천 군사가 진을 열어도 / 千軍陣開 한 채찍에 번개같이 달리도다 / 一策電奔] 하였다.
다섯째, 용등자(龍騰紫 용의 달림을 가진 자류마(紫?馬)) 단천(端川) 소산으로, 왜적을 평정할 때 탔으며, 화살 한 대를 맞음. 자주빛이고 갈기와 꼬리는 검었다. 찬에 이르기를, [뿔 없는 용이 변하여 / ??變化 바람과 구름이 몰리도다 / 風雲雜遝 고죽(해주)에서 이겨 돌아왔으니 / 凱旋孤竹 공은 세 번의 승첩을 남겼도다 / 功存三捷] 하였다.
여섯째, 응상백(凝霜白 어린 서리와 같은 백마) 제주도 소산. 순 흰색이나 주둥이와 배와 음경과 발굽은 검으며, 압록강 회군 때에 탔었다. 찬에 이르기를 [신기함은 하늘이 준 것 / 神奇天與 모양이 흰 비단이로다 / 光景練素 의로운 깃발을 한 번 돌리어(태조의 위화도 회군을 말함) / 義旌一回 왕업을 영구히 심었도다 / 鴻業永樹] 하였다.
일곱째, 사자황(獅子黃 사자와 같은 황마(黃馬)) 강화(江華) 매도(煤島) 소산으로 지리산에서 왜구를 평정할 때 타던 말. 누른색이며 주둥이는 검다. 찬에 이르기를, [3척의 칼로 위엄을 떨쳐서 / 三尺威奮 한 번 성을 냄으로 성공을 했나니 / 一怒而成 지리산 고개에 / 頭流山峙 누른 사자가 유명했었다 / 黃獅有名] 하였다.
여덟째, 현표(玄豹 검은 표범) 함흥 토아동(兎兒洞) 소산. 왕이 되기 전 왜구를 평정할 때 탔었다. 빛깔은 검고 음경은 표범의 것과 같다. 찬에 이르기를, [현표의 빠르고 빠름이여 / 玄豹?迅 향한 곳에 넓은 것이 없도다 / 所向無? 달리는 빠른 발이여 / ?騁逸足 우리 태조의 무열을 드날렸도다 / 揚我武烈] 하였다.
## 홍재전서(弘齋全書) 제13권 서인(序引) 6 마정인(馬政引)
우리나라도 국조(國朝) 초기에 여덟 준마가 있어 가방(家邦)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탰다. 첫째가 횡운골(橫雲?)이고, 둘째가 유린청(游麟靑), 셋째가 추풍오(追風烏), 넷째가 발전자(發電?), 다섯째가 용등자(龍騰紫), 여섯째가 응상백(凝霜白), 일곱째가 사자황(獅子黃), 여덟째가 현표(玄豹)로서 그림으로 그려 그 신비함을 전하고, 시로써 그 공로를 노래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주(周)의 사(駟)나 노(魯)의 경(?)처럼 그 공을 관현(管絃)으로 연주하여 영원히 전해지기를 기약했던 것이다. 드디어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나서는 동문(東門) 10리 밖에다 화양정(華陽亭)을 짓고 그곳을 말 사육하는 곳으로 정했는데, 그때 박연(朴堧)이 예악(禮樂)을 새로 정하고, 최윤덕(催潤德)은 무예에 출중하여 그때를 요순 시대라고 일컬었다. 그후 세조 때에도 12명마(名馬)가 있었는데 약표(若驃), 약류(若?), 약려(若驪), 약규(若?), 약곡(若鵠), 약구(若駒), 약리(若?), 약표(若豹), 약홍(若鴻), 약룡(若龍), 약린(若麟), 약기(若驥)로서 마치 용이 움직이듯 날랬고, 또 그림으로 그려 3백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빛을 발하고 있다.
## 홍재전서(弘齋全書) 제15권 비(碑) 치마대구기비명(馳馬臺舊基碑銘)
저 우뚝한 산 [彼?矣山] / 구불구불한 게 마치 신룡이 도사리고 있는 듯하네 [????如神龍之交盤] / 옥으로 장식한 고삐에 금장식을 한 안장으로 육룡을 타고 삼한을 다스리다가 [飛玉?而揚金鞍駕六龍而奠三韓] / 우리에게 억만년 태산 반석 같은 기반을 남기셨다네 [以垂我萬億年磐泰之安]
함흥부(咸興府) 북쪽에 반룡산(盤龍山)이 있는데, 두 봉우리가 앞뒤로 맞보고 있고 그 가운데는 숫돌같이 평탄한 길이 나 있는데, 우리 성조께서 늘 그곳에서 말을 달렸으므로 후인들이 그곳을 치마대(馳馬臺)라고 이름하였다. 옛날 기산(岐山) 남쪽에서 물가 따라 말을 달렸던 태왕(太王)과 똑같이 빛나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 사실을 노래로 만들고, 그 가락을 관현(管絃)에다 올려 영원히 전해야 할 것이다. 이 소자가 왕위를 이어받은 지 21년이 되는 정사년 10월에 독서당 명을 쓰고 나서 이어 이 대에도 비를 새겨 세웠다.
성조가 타시던 팔준마(八駿馬)는 ① 횡운골(橫雲?), ② 유린청(游麟靑), ③ 추풍오(追風烏), ④ 발전자(發電?), ⑤ 용등자(龍騰紫), ⑥ 응상백(凝霜白), ⑦ 사자황(獅子黃), ⑧ 현표(玄豹)인데, 그 산 이름이 반룡이니 여기에서 지령(地靈)의 효험과 신기한 하늘의 조화를 징험할 수 있는 것이다.
## [耳溪集] 卷五 詩○朔方風謠 丁酉冬。黜補慶興府使。
馳馬臺
在盤龍山上。卽咸興主山。??起伏。環抱大野。兩峰對立。山腰平廣。馳道遺蹟。尙今宛然。
馳馬臺何崔嵬。盤龍之山騰?數百里。上有平原??而紆回。和陵定陵似?陵。佳氣?籠久?胎。龍瞳日角神且武。天啓三韓濟世才。是時王氏失其馭。萬姓愁號其聲哀。爰有神駒出朔方。太一?兮從天徠。遊麟靑獅子黃。雲之孫兮龍之媒。神物終爲聖人用。羈之絡之雲田社裏來。騎上下山捷如飛。霜蹄滅沒絶浮埃。?行鳳?中節奏。十里五里一徘徊。延頸翹足起遠想。向風長嘶殷其雷。馳騁大小百餘戰。北夷南蠻誰不?。龍飛九五壬申歲。一戎衣兮淸八垓。箕子舊封三千里。鷄狗不驚戶夜開。弓?甲?不復用。馬兮歸之靑海?。靑海茫茫。芳草??。??餘痕臺上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