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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일본수호약조시말

조회 수 9781 추천 수 0 2009.12.02 17:06:45

대전향토사료관 `여일본수호약조시말' 공개

(대전=연합뉴스) 정찬욱 기자 = 1876년 일제의 조선 침략 시발점이 됐던 '강화도조약(江華島條約.공식 명칭 조일수호조규)'이 일본의 강압 아래 맺어진 불평등조약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시켜 주는 '비망록'이 발견됐다.

대전시 향토사료관은 최근 제월당(霽月堂) 송규렴(宋奎濂.1630-1709)선생 문중으로 부터 기탁받은 유물에서 1876년(고종 13년) 강화도조약 체결 당시 회담 사전조율부터 참석자들이 나눈 대화, 상황 등이 자세히 기록된 비망록 '여일본수호약조시말(與日本修好約條始末)'을 발견, 2006년 12월 5일 내용 일부를 공개했다.

이 비망록은 가로 15㎝.세로 20㎝ 크기의 한지에 한자로 빼곡이 94페이지에 걸쳐 서술된 기록으로 작성자가 명확하진 않지만 당시 조선 전권대관(全權大官)이던 신헌(申櫶.1810-1884)을 수행하며 회담을 곁에서 지켜본 제월당 문중 인물 중 한 사람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비망록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일본 전권변리대신(全權辨理大臣) 구로다 기요타카(黑田淸隆)가 당시 조약 내용을 적은 책자를 신헌에게 내보이며 "조약 13건(체결된 것은 12항)을 초록했으니 모름지기 자세히 보아달라. 그리고 귀 대신(신헌)이 몸소 조정에 나아가 직접 올려 품의해 처리해 달라"고 조약 체결을 종용한 부분이다.

더구나 조약 예비회담장에서는 일본 측이 "귀국에 수년간 조약 체결을 요구했으나 묵묵부답으로 일관, 국내에서는 병사를 일으켜 (조선을) 치려 했지만 만류했다"고 말하면서 자리에 있던 부관이 "만류하는 과정에 당했다"며 칼로 난자당한 양 옆구리를 보여줬다는 기록도 있어 일종의 협박성 상황이 연출됐음도 시사하고 있다.

강화도조약은 일본이 1875년 통교교섭을 위해 조선에 사신을 파견해왔으나 성립되지 않자 측량을 빙자해 군함 운요호(雲揚號)를 조선 근해에 파견, 부산에서 영흥만(永興灣)에 이르는 동해안 일대의 해로측량과 함포(艦砲)시위를 벌이고 운요호를 강화도 앞바다에 재차 출동시켜 조선측의 발포 사태를 유발해 맺은 최초의 불평등조약이다.

이 비망록은 이밖에 운요호 사건 이후 양국 부관 윤자승(尹滋承.1815-?)과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 1836-1915)가 만나 사전조율 때 나눈 대화를 비롯해 신헌과 구로다가 세차례에 걸친 회담에서 나눈 대화와 미묘한 신경전, 조약 체결 이후 고종에 올린 보고문 등도 담고 있다.

양승률 학예연구사는 "이 비망록은 신헌이 강화도 조약에 대해 기록한 `심행일기'에 이은 두번째 기록물이지만 보다 세세한 내용까지 기록돼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 입력 2006.12.05 16:05

jchu2000@yna.co.kr

1876강화도조약시말.jpg 

<여일본수호약조시말> 15㎝·X 20㎝, 94P, 대전향토사료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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