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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 핫이슈 옥새논쟁 기록 ‘심행일기’ 발굴
ㆍ동북아역사재단 ‘근대한국외교문서’ 첫 발간
조선이 맺은 최초의 근대 조약인 1876년 강화도조약(공식명 조일수호조규)의 내막을 보여주는 외교문서가 발굴됐다. 조약 체결 당시 조선 측 전권대신인 신헌(申櫶)이 일본 대표 구로다 기요타카(黑田淸隆)와 벌인 담판 전 과정을 일기 형식으로 남긴 <심행일기(沁行日記)>의 하권이 발견된 것이다. ‘심(沁)’은 조약 회담이 벌어진 강화도 진무(鎭撫) 지역을 말한다.
17일 근대한국외교문서편찬위원회(위원장 김용구)에 따르면 1876년 1월30일(음력)부터 2월18일까지의 내용을 담은 <심행일기> 상권은 고려대 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하지만 2월19일부터 3월1일까지의 내용을 기록한 하권은 그동안 흩어져 없어진 것으로 알려져 왔다. 편찬위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이 하권을 발굴, 번역 작업을 진행 중이다.
강화도조약의 교섭 과정과 막후 이야기까지 기록돼 있는 <심행일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조약체결 과정에서 최대 이슈였던 조선 국왕 고종의 이름(이희·李凞)이 담긴 옥새 날인에 대한 논쟁 부분이다. ‘26일 무오(戊午)’(1876년 2월20일)로 적힌 부분에는 “비준은 반드시 어명이 있는 어보(옥새)라야 진정한 수호(修好)가 될 수 있다”는 구로다의 주장과 “어명이 있는 어보는 막중막엄해서 신하가 감히 입에 올릴 수도 없는 것이거늘, 하물며 감히 문자로 쓸 수 있겠는가”라는 신헌의 주장이 맞선다. 구로다는 서양의 국제법 관례를 거론하며 옥새 날인을 요구했고, 신헌은 끝내 양보하지 않았다. 결국 옥새 날인은 없었지만 일본은 이를 활용해 불평등조약을 체결, 실리를 취했다.
강화도조약은 일본의 조선 침탈 출발점이지만 조선 측 외교문서 자료가 전무하다시피해 이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일본 측 자료에 의존해왔다. 구한말 외교사 연구에 조선 측 담론이 반영될 수 없다는 의미다. ‘근대한국외교문서’ (사진)발간은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작업이다. <심행일기>의 주요 부분도 내년 발간될 외교문서집 3권에 실릴 예정이다.
동북아역사재단 지원으로 2007년 시작된 외교문서 편찬 작업은 마무리 단계다. 편찬위는 국내외에 흩어져 있는, 고종 즉위 원년(1864)부터 한일강제합방이 이뤄진 1910년까지의 외교문서를 수집해 분류한 첫 결실인 1·2권을 내놓으며 19일 한국관광공사에서 심포지엄을 연다. 김용구 한림대 한림과학원장은 “이번 발간을 계기로 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공식 외교문서집이 없는 나라라는 오명을 벗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화도조약의 교섭 과정과 막후 이야기까지 기록돼 있는 <심행일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조약체결 과정에서 최대 이슈였던 조선 국왕 고종의 이름(이희·李凞)이 담긴 옥새 날인에 대한 논쟁 부분이다. ‘26일 무오(戊午)’(1876년 2월20일)로 적힌 부분에는 “비준은 반드시 어명이 있는 어보(옥새)라야 진정한 수호(修好)가 될 수 있다”는 구로다의 주장과 “어명이 있는 어보는 막중막엄해서 신하가 감히 입에 올릴 수도 없는 것이거늘, 하물며 감히 문자로 쓸 수 있겠는가”라는 신헌의 주장이 맞선다. 구로다는 서양의 국제법 관례를 거론하며 옥새 날인을 요구했고, 신헌은 끝내 양보하지 않았다. 결국 옥새 날인은 없었지만 일본은 이를 활용해 불평등조약을 체결, 실리를 취했다.
강화도조약은 일본의 조선 침탈 출발점이지만 조선 측 외교문서 자료가 전무하다시피해 이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일본 측 자료에 의존해왔다. 구한말 외교사 연구에 조선 측 담론이 반영될 수 없다는 의미다. ‘근대한국외교문서’ (사진)발간은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작업이다. <심행일기>의 주요 부분도 내년 발간될 외교문서집 3권에 실릴 예정이다.
동북아역사재단 지원으로 2007년 시작된 외교문서 편찬 작업은 마무리 단계다. 편찬위는 국내외에 흩어져 있는, 고종 즉위 원년(1864)부터 한일강제합방이 이뤄진 1910년까지의 외교문서를 수집해 분류한 첫 결실인 1·2권을 내놓으며 19일 한국관광공사에서 심포지엄을 연다. 김용구 한림대 한림과학원장은 “이번 발간을 계기로 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공식 외교문서집이 없는 나라라는 오명을 벗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2009년 11월 17일(화) 오후 06:19
<손제민기자 jeje17@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