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정수사에서 1548년 간행한 김시습의 <십현담요해(十玄談要解)> 언해본
김시습(1435~1493)이 쓴 <십현담요해(十玄談要解)>를 한글로 옮긴 언해본이 성철스님이 주석했던 해인총림 해인사 백련암 서고에서 발견됐다.
지난 9월 15일 백련암 감원 원택스님은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회의실에서 “올해 4월 중순 백련암 장경각 서고에서 장서를 정리하던 중 1548년 강화도 정수사에서 판각된 <십현담요해> 언해본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1548년 강화 정수사서 판각
이번에 발견된 <십현담요해> 언해본은 현재 문화재나 국립도서관, 각 대학 서지목록에도 기록되지 않은 유일본으로 추정돼 불교계와 학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십현담요해>는 당나라 동안상찰(同安常察)스님이 쓴 10가지 게송인 <십현담>에 주를 단 것으로, 조동종 가풍을 유려한 시풍으로 풀어낸 것이 특징이다. <십현담>과 청량문익(885~968)스님의 주를 토대로, 김시습이 41세 때 주석을 다시 달았다.
장경각에서 나온 언해본은 <십현담요해>가 처음 발간된 뒤 73년 후인 명종 2년(1548) 강화도 정수사에서 판각됐다. 주로 김시습이 주해한 열경주(悅卿註, 열경은 김시습의 字)만 추려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책은 김시습이 한문으로 쓴 서문을 시작으로 오파원류도(五派源流圖)와 심인(心印).조의(祖意).현기(玄機).진이(塵異).불교(佛敎).환향곡(還鄕曲).파환향곡(破還鄕曲).회기(回機).전위(轉位).정위전(正位前) 등 10편의 선시, 조주삼문(趙州三門)과 십현담음의(十玄談音義)가 수록됐다.
서문과 권말 간기에는 <십현담요해>와 언해본의 조성시기를 명확히 기록돼 있다. 서문에는 ‘성화 을미년 도절(桃節) 재생패(哉生覇)에 청한자(淸寒子) 필추(苾芻) 설잠(雪岑)이 폭천산(수락산 기슭 폭천정사)에서 주를 쓰다’라고 기록돼 김시습이 <십현담요해>를 성종 6년(1475)에 썼음을 보여준다. 또 ‘가정27년 무신 충중월일 강화지마리산정수사 판각’과 화주 희조(熙祖), 각수 신희(信熙) 등 간기는 언해본이 간행된 시기와 화주자, 각수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10월8일 성철스님 열반16주기 학술회의서 연구결과 발표
김호귀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는 “<반야심경> <금강경> <능엄경> 등 대중적인 경전들이 언해본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미뤄볼 때, <십현담요해>가 16세기에 언해본으로 간행됐다는 것은 당시에 많이 읽혔음을 반증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려 후기 이후 종파의식이 사라지고 임제종 의식만 남아 있던 시대상황으로 미뤄보아 선종사상 이해 측면에서 사람들에게 보급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서명패 문화재청 서지 전문위원은 “이 판본은 기존의 <십현담요해>에 수록된 김시습의 주석을 간결하게 해 구성된 독립된 언해본으로, 알려진 전래본이 없어 희귀본에 속한다”며 “한글에 반치음ㅿ과 꼭지ㅇ이 쓰이고 있어 16세기 중엽 국어사연구와 서지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한편, 원택스님은 오는 10월8일 오후1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성철스님 열반 16주기 추모학술회의를 열고 <십현담요해> 언해본에 대해 조명한다. 이날 학술회의에서는 박진호 서울대 교수가 ‘십현담요해 언해본의 국어학적 가치’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다.
어현경 기자
불교신문 2009-09-15 오후 12:45:26 / 송고
“십현담요해 언해본은 제판본 대교한 최종본”
하정용 연구원 ‘성철스님 추모학술회의’서 주장
해인총림 해인사 백련암 장경각에서 최근 확인된 <십현담요해>와 관련, 한문본은 15세기 김시습 생전 당시 간행된 초간본이며, 유일본인 언해본은 기존의 제판본을 대교한 최종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하정용 성철선사상연구원은 지난 8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전 조계종정 성철스님 열반 16주기 추모학술회의에서 이같이 밝혔다.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이사장 원택스님)이 ‘성철스님 소장 <십현담요해> 언해본의 의미’를 주제로 열린 이날 학술회의에서는 성철스님이 소장했던 <십현담요해> 언해본이 갖는 서지학적.국어사적 의미에 대한 고찰이 이뤄졌다. 이날 하정용 연구원은 ‘십현담요해의 서지학적 고찰’에서 국내에 전하고 있는 <십현담요해>와 장경각에서 발견된 <십현담요해> 한문본과 언해본을 비교해 발간 시기를 추정했다.
<십현담요해>는 조선성종 6년(1475) 김시습(1435~ 1493)이 조동종의 가풍을 게송으로 읊은 동안 상찰스님의 저서 <십현담>의 요지를 해석한 책이다. 김시습은 <십현담>에 청량 문익스님이 주를 단 <동안찰십현담청량화상주(同安察十玄談淸凉和尙註)>를 보고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이 책의 소장자인 성철스님은 대구 파계사 성전암에서 동구불출하며 정진하다가 1965년 문경 김용사에서 첫 법석을 열고 <십현담>에 대해 법문했다고 한다. 하 씨는 최근 장경각 정리 과정에서 당시 법문을 녹음한 테이프를 확인하고, <십현담요해> 제판본과 함께 원문 복원작업을 진행했다.
하 씨에 따르면, 성철스님이 강독하는 데 참고했던 백련암소장 <십현담요해>의 제판본은 단국대 퇴계기념도서관에 1본, 연세대 학술정보원 국학자료실에 2본, 영광 불갑사에 1본 등 도합 5개 판본이 존재한다. 그는 이들 판본의 선후 및 간행시기 등을 밝히기 위해 <십현담요해>와 합철된 <조동오위군신도서요해>를 살펴봤다. 그 결과 국립중앙도서관에 1책, 연세대 학술정보원 국학자료실에 소장된 민영규기증본인 <조동오위군신도서요해> 1책, 그리고 백련암소장본 <십현담요해> 1책 등 3책을 발견했다. 3책의 <조동오위군신도서요해>는 같은 판본임이 밝혀졌으나 합철된 <십현담요해>는 두 종류인 것이 확인됐다.
하 씨는 “국박과 민영규기증본의 <십현담요해>가 기존의 단국대본이나 백련암 소장본과 달라 2개의 판본의 층위가 존재함이 드러났다”며 “<십현담요해>만으로 1509년 간행된 불갑사본이 그 둘과는 또 다른 판본임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불갑사본은 백련암소장본의 복각본일 가능성이 있다”며 “따라서 백련암소장본은 민영규기증본(1495년 간행)보다도 앞선 시기인 김시습의 생전으로, 1493년 이전에 간행됐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장경각에서 함께 발견된 <십현담요해> 언해본은 1548년 강화도 정수사에서 판각된 것으로, <십현담> 원문과 김시습의 주석만을 한글로 번역했다. 원문의 내용이 한문본과 다른데, 이에 대해 하 씨는 “김시습이 아닌 후대의 스님이 16세기 초에 접할 수 있었던 송판.원판.명판 등의 제판본을 참고한 후에 교감했기 때문”이라며 “언해본은 기존의 제판본을 대교한 <십현담요해>의 최종본으로 그 가치가 높아 성철스님이 이를 채택해 김용사에서 법석을 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박진호 서울대 교수는 ‘십현담요해 언해본에 대한 국어학적 고찰’에서 15세기 및 16세기의 다른 중세 한국어 문헌과 비교해 차이점과 특이점을 찾아냈다. 박 교수는 “언해본은 15세기 및 16세기의 다른 중세 한국어 문헌에서는 볼 수 없는 많은 희귀 어휘들을 포함하고 있고, 다른 문헌에서는 볼 수 없는 유일례도 많이 있다”며 “번역 양상도 특이한 점이 많아서 국어사 연구에 매우 소중한 자료이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중국에서 찬술된 불전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찬술된 불전을 언해했다는 점에서 한국불교사에서 갖는 의의가 남다르다”고 밝혔다. 이 시기 간행된 선종 관련 서적은 <선종영가집언해> <금강경삼가해> <법집별행록언해> 등이다.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 사람이 찬술한 불전의 언해로는 <목우자수심결언해> <초발심자경문언해> <선가귀감언해> 등이 있다.
<십현담요해> 언해본에 대해 박 교수는 “15세기말에서 16세기에 이르는 시기에 한국에서 선종계열 불전들의 언해본을 간행해 온 연장선상에 있다”고 봤다. “당시 우리나라의 선종의 학문적 수준이 매우 높았고 사람들도 이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며 “그랬기 때문에 언해까지 하게 됐을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불교신문 2564호/ 10월10일자] 2009-10-07 오전 11:13:11 /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