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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도기행, 향토사랑의 기행시집 [기호일보]

조회 수 8329 추천 수 0 2009.04.30 09:40:13
향토사랑의 기행(紀行)시집, 심도기행
김양수 (문학평론가)
2009년 04월 27일 (월) 14:45:27 기호일보 

[옛날의 서문은 길가에 있는데/옹기 굽는 연기 올라 농장을 싸고 있네/평평하게 풀 우거진 넓다란 빈터가/당시의 훈련장이었음을 알게해주네(한시 본문은 생략)      서문동은 혈구산 남쪽에 있다. 고려 고종이 정자산 아래로 천도했을 때 이곳을 서문현(고개)이라고 했다. 습진원들은 곧 고려 때 군진을 연습하던 곳인데, 오래 전부터 그릇가게(옹기전)를 내서 생활하는 자가 많았다.]

위의 詩와 그 아래 이어진 해설은 심도기행(沁都紀行)이라는 시집에서 순서없이 뽑아 옮긴 것이다. 이 시집의 발간사 서두에서 이갑영 인천학 연구원장은 기술하기를 “화남(華南) 고재형(1846~1916)의 심도기행이 김형우 박사에 의해 완역되었다(2008년). 심도는 강화의 별칭이다..고재형은 1846년 강화군 두운리에서 태어났다... 1888년(고종25년)에 식년시(과거)에 급제했으나 관직에는 나아가지 않은 선비였다.” 그러니까 이갑영 원장에 따르면 고재형은 평소 충의와 대의를 좇은 인물들을 흠모해 왔는데 전통이 급속히 사라져가는 시류풍속을 개탄하던 나머지 자신이 태어난 강화군 불은면 두운리 두두미마을에서 출발해 당시 강화군 17개 면 100여 마을을 필마에 의지해 강화군 전체의 산천과 고적을 다시 탐방하기 위해 1906년 봄 그가 60세 때 강화기행 순례를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바로 10년 전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기력으로 노쇠한 나이에 새삼스럽게 자기 고장 기행순례를 떠나야 했던 동기는 무엇보다 자신의 삶터인 강화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 솟구친 우려와 자기 고장에 대한 절절한 사랑에서 촉발된 것이라고 한다. 그가 강화순례를 떠난 해로 말하면 서구문명이 물밀듯 밀려 들어와 전통과 유풍이 사라져 가는 위기에 놓인 때였으며, 일본이 을사늑약을 강요해 대한제국의 운명이 기울어져 가던 암울한 시기이기도 했다. 자기 고장의 구석구석을 빠짐없이 돌아보고 지은 이 시집의 주목되는 점은 일반 기행문학작품들이 자기 고장이 아닌 먼 이방지대의 이색적인 풍물을 주된 대상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에 반해 자신이 태어나 성장했고 거의 한평생을 살아온 자기 삶의 터전을 주대상으로 했다는 점이다. 이질적인 문물과 바람이 몰려들어 아주 먼 옛날로부터 꾸려오고 간직해온 아름다운 전통문화가 밀려나면 안 되겠다는 위기감과 주체적 삶의 수호 관철을 위해서 성찰의 심정을 쓸어안고 고장지킴이의 다짐을 결행한 것이다. 그의 256수의 7언시들 속에는 강화라는 고장의 최정상인 마리산에 나라의 뿌리 시조인 단군이 세운 참성단을 높이 추켜세우는 데 거침이 없다. [마리산 최상봉에 올라가 앉아보니/강화섬 한조각이 배를 띄운듯 하구나/단군의 돌단은 천지를 떠받들고/억만년 긴세월을 물과 함께 남아있네]

저자의 참성단 예찬시만이 아니고 그 시를 계기로 해 목은 이색의 걸작시가 곁들이고 참성단을 노래한 시들이 이어지고 있다. 고재형은 자기만의 예찬시로 끝나지 않고 다른 명인들의 걸작품들도 함께 인용해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저자의 또 다른 참성단 예찬시도 볼 수 있다.

[참성단 밝게보여 멀지만 흐릿하지 않고/동쪽은 산, 남쪽은 호수, 서쪽은 바다라네/오백리 먼 거리가 두 눈에 들어올 듯 하고/저 멀리 기러기 돌아가는 곳, 그림자는 높았다 낮아지네]

‘심도기행’시집이 읽는 이들에게 호감을 안겨주는 것은 시작품에 이어지는 해설이 구체적이고 친근감을 더하게 해주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 시편들을 두루 살피고 나면 강화역사의 모든 대목이 떠올라 오게 하고 있다. ‘충렬사’를 다룬 시편에서는 ‘충렬사’의 유례와 함께 제사모신 21분에 대한 내력이 읊어져 감동을 더해주고 있다. 이 ‘심도기행’시집 속에는 강화의 아름다운 산천과 명소를 위시해서 역사적 인물들과 역사적 사실들이 줄줄이 나열돼 있을 뿐만 아니라 강화를 수없이 찾아갔던 사람들도 미처 잊고 있거나 깨닫지 못하고 있는 일들을 조명해 보여주고 있어 늘 머리맡에 두고 싶은 시편들이 수두룩하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이 자기 고장이 아닌 타 지역(관찰사로 부임해있던)의 풍광을 예찬한 명편이라고 한다면 ‘심도기행’은 자기 고장, 자신의 향토를 거울속에 비추어 보여줌으로써 애향심을 키우고 자기 고장의 사랑이 바로 나라사랑의 바탕이 되는 것이며 그것이 또한 진정으로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갖게 해준다.
http://www.kiho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4525

심도기행 표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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