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비라도 세우자” 진도 주민들 의기투합
동네 최고 소리꾼 27명 매일 3시간씩 구슬땀
“저기 엄청나게 많은 배들이 몰려 온당께.” “뭔 놈의 배가 온다고 그러냐. 오메 저게 뭐시당가.”
19일 전라남도 진도 향토문화회관 무대. 조명이 켜지자 바닷가에 놀던 아이가 헐레벌떡 들녘으로 달려와 외쳤다. 느닷없는 소리에 김매던 아낙들이 모처럼 허리를 펴면서 이미 마을 앞바다로 몰려든 배 수천 척을 보고 깜짝 놀랐다.
때는 바야흐로 1270년 여름 어느 날, 삼별초군이 강화도를 떠나 전남 진도군 벽파진으로 들어선 것이다. 몽고에 무릎을 꿇은 고려 왕조에 반기를 들고, 항쟁의 깃발을 올린 삼별초군이….
“몽고 오랑캐와 맞서 싸우기 위해 왔소이다. 여기, 우리의 온왕도 오셨소.”
구슬픈 남도가락에 삼별초 용사들의 애타는 호소가 이어지자 화답이 우렁찼다. “좋소. 그랍시다.”
그날로부터 740년이 흐른 이 순간, 진도 사람들은 ‘삼별초 정신’을 기리는 뮤지컬 배우가 되었다. 이들이 이날 공연한 뮤지컬은 <구국의 전사, 삼별초>.
진도는 삼별초가 새로운 왕국까지 세워 대몽항쟁을 벌인 의로운 땅. 용장산성 등 유적지가 많지만 대부분 방치돼 있다. 이 뮤지컬 역시 이를 안타깝게 여긴 민간단체 ‘삼별초 역사문화연구회’가 기념비 하나라도 세워보자는 취지에서 기획한 것이다.
이 뮤지컬에는 나라를 바로 세우려는 민초들의 건강한 삶, 그리고 주인공 배장군과 진도 여인 동백 사이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 얘기도 곁들여져 있다. 진도북춤과 만가·육자배기·들노래·진도아리랑 등 진도 소리도 곳곳에 녹아 있다. 1시간40분(3막) 동안 펼쳐진 소리와 춤사위에 관객 200여명은 환호했다. 배우는 모두 주민들이다. 초등학교 어린이부터 팔순 넘은 할머니까지 27명. 학생·농민·어민·상인 등 평범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춤과 노래만은 진도에서 최고 실력파로 꼽힌다. 진도는 마을마다 수십년 전부터 ‘판소리 노래방’이 있을 만큼 저마다 노래실력을 뽐내온 곳이다. 이 뮤지컬을 기획한 연구회는 진도 본섬 전체를 돌며 오디션을 통해 이들을 뽑아 올 초부터 십일시마을 회관에서 연습을 해왔다. 지난 6월부터는 10~20㎞ 밤길을 마다 않고 달려왔다. 일요일만 쉬고, 일주일에 닷새 동안 매일 오후 7시부터 3시간 동안 매달렸다.
목청을 뽑고, 몸을 놀리느라 금방 배가 고팠다. 그럴 때마다 인근 마을 주민들이 옥수수를 쪄오고, 개떡·쑥버무림을 밤참으로 가져와 분위기를 돋웠다.
대본과 총감독을 맡은 곽의진씨(소설가)는 “삼별초의 나라사랑 정신과 민중의 분노를 후대에 남기고 싶었다”면서 “내년 초 예정된 서울 대학로 공연을 위해 더욱 갈고 다듬어야겠다”고 말했다.
진도 주민이 손수 만들고 출연한 뮤지컬 <구국의 전사, 삼별초>가 19일 진도 향토문화회관 무대에 올려졌다. | 진도군 제공
경향신문 진도 | 배명재 기자
입력 : 2010-08-19 2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