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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장경을 둘러싼 쟁점들 [남권희]

조회 수 136 추천 수 0 2010.06.16 00:48:24
해인사에 남아 있는 재조대장경은 흔히 ‘팔만대장경’이라고 불리며 그간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또한 내년에 만든 지 천 년을 맞이하는 초조대장경 역시 선학들의 노력에 힘입어 베일이 하나씩 벗겨지고 있다. 하지만 고려대장경에 관한 쟁점은 여전히 많다.

첫째, 대장경의 판을 새긴 시기·규모·장소에 관한 것이다. 초조대장경의 경우 현종의 몽진 시기와 조성 발원 시기가 논란거리다. 국란(國亂) 속에서 민생이라는 시급한 문제를 제쳐둔 채 불력(佛力)으로 전쟁을 막고자 하는 발원은 기록 부족으로 인과관계를 구명하기 어렵다. 또한 판각한 장소와 규모도 알 수 없다. 보관 장소에 관해선 역사 기록과 현실성이 엇갈리는 부분이 있다. 고려교장(속장경)의 경우 10년 남짓한 시간에 수많은 자료를 정리해 판각까지 완료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대장경 간행을 주관한 곳이 개성에 있던 교장도감이었지만 금산사·해인사 등에서도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재조대장경의 경우 강화도 대장도감에서 판각까지 이루어졌는지, 남해 분사대장도감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놓고도 논쟁이 벌어진다.

둘째, 대장경이 국가사업으로 추진됐지만 무신정권 중 하나인 최씨 집안(최충헌·최우·최항·최의)의 주도 아래 이루어졌다는 견해도 끊이지 않는다. 정부 차원에서 책임자를 임명하거나 물력 동원을 했다는 역사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책임을 맡은 인물로 거론되는 홍천 용씨의 용희수, 담양 국씨의 국영돈의 경우 일부 족보에서 대장경 성판도감(成版都監)에서 15년간 판각 감독을 맡았다고 돼있으나 관찬 사료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

셋째, 대장경이 옮겨진 경위와 시기에 대한 문제다. 초조대장경이 개성 남쪽의 흥왕사에서 부인사(대구)로, 재조대장경이 강화도 선원사에서 해인사(경남 합천)로 옮겨진 기록이 분명하지 않다. 이를 위해 동원된 물자·인력, 운반 과정에 대한 기록도 없다. 일부 학자는 아예 ‘경판이 새겨진 장소는 강화도가 아니라 해인사 자체이거나 인근의 절’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팔만대장경의 경판 표면에서 먼 거리를 이동해 생길 수 있는 마모 흔적을 비롯한 그 어떤 흠도 찾을 수 없다(김상진 『나무에 새겨진 팔만대장경의 비밀』)”는 것이다.

넷째, 대장경 편찬을 총괄한 것으로 알려진 수기(守其)의 『교정별록(校正別錄)(30권)』은 단독 작업이라기보다 교정에 참여한 여러 사람의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현존본의 수록 내용은 대장경 전체가 아니라 일부 경전에 대한 것으로 그 완전성과 일부 간행의 이유를 알 수 없다.

다섯째, 교장(속장경)의 경우 대각국사 의천(1055∼1101)의 편집 뒤 고려인에 의해 계속 교감이 이루어졌다. 중국 응현 목탑의 불복장(佛腹藏)에서 발견된 『화엄경수소연의초』의 경우, 일부는 요나라 판본을 번각(飜刻: 한 번 새긴 책판을 본보기로 삼아 그 내용을 다시 새김)한 것도 보이므로 초기에는 중국본을 그대로 번각하다가 점차 고려의 서체와 교정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고려에서 초조·재조대장경이 만들어지기 전, 중국에선 북송칙판대장경(972~983년), 거란대장경(11세기)이 나왔다.

여섯째, 재조대장경의 중복본, 인본은 있으나 판목이 없는 자료의 성격을 놓고 이견이 많다. 최근 판목이 발견된 『내전수함음소』의 2판은 인출본이 일본 교토의 오타니(大谷)대학에 남아 있다. 여기에는 을사년에 대장도감에서 판각됐다는 간기(刊記)가 있다. 그러나 이는 대장경 목록이나 고종 때 대장경 2부를 인쇄한 해명장웅(海溟壯雄) 스님의 목록에도 없는 것이다. 대장경 편성 체제와 이동을 연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말해주는 사례다. 결국 자료와 기록의 부족 현상이 계속되는 한 학자들의 연구 쟁점은 쉽게 해소되기 어려울 것 같다.

남권희 경북대 교수(문헌정보학과) | 중앙SUNDAY 제166호 | 2010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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