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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학파 저촌 심육의 간찰(1732)

조회 수 291 추천 수 0 2010.04.18 13:2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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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학파 저촌 심육이 둔곡 이진병에게 보낸 편지(1732, 壬子)

개인소장, 49*29.5cm

 

심육(沈?)에 대하여

1685(숙종 11)∼1753(영조 29).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화보(和甫)·언화(彦和), 호는 저촌(樗村)·저헌(樗軒).

조부는 응교(應敎) 심유(沈濡)이고, 부친은 영의정(領議政) 심수현(沈壽賢)이다. 모친은 전의이씨(全義李氏) 이만겸(李萬謙)의 딸이다. 하곡(霞谷) 정제두(鄭齊斗)의 문인으로서 강화학파(江華學派)의 중심 인물이다.

1705년(숙종 31) 을유증광사마시(乙酉增廣司馬試)에 진사(進士) 3등으로 합격하였다. 1745년(경종 4)에 왕자사부(王子師傅)에 제수되었고, 이후 익위사부수(翊衛司副率), 시강원자의(侍講院諮議), 지평(持平) 등을 역임했다. 또한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 장령(掌令), 집의(執義), 승지(承旨), 형조참의(刑曹參議), 호조참의(戶曹參議), 성균관좨주(成均館祭酒), 대사헌(大司憲) 등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아니하고 사직하였다.

이처럼 평생 여러 차례의 소명(召命)에 받았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대부분을 강학(講學)과 유람(遊覽)으로 보냈는데, 특히 부친을 배행(陪行)하여 의주(義州), 관동(關東), 영남(嶺南) 등지는 물론 중국 연경(燕京)까지 다녀오면서 견문을 넓혔다. 이 때 지은 시작(詩作)이나 일기(日記) 등을 모아 편찬한 《저촌유고(樗村遺稿)》에 남아 있는데, 모두 47권 18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1938년에 정제두(鄭齊斗)의 7대손인 정계섭(鄭啓燮)의 주도로 정리, 등사하여 필사본(筆寫本)이 현재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이진병(李震炳)에 대하여

1679(숙종 5)∼1756(영조 32).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김산(金山). 자는 병연(炳然), 호는 둔곡(遁谷) 또는 미산거사(嵋山居士). 현감 북상(北相)의 아들이다.

과거공부를 외면하고 오직 자신을 위한 학문에 뜻을 두어 윤증(尹拯)에게 의탁하여 배웠다. 1737년(영조 13) 광릉참봉(光陵參奉)에 제수되고, 1739년 광흥봉사(廣興奉事)로 옮겼으며, 1741년 희릉직장(禧陵直長)에 제수되었다. 이듬해 와서별제(瓦署別提)를 거쳐 1743년 진보현감이 되었다. 임기를 끝내고 돌아올 때에는 책이 두어 묶음 있을 뿐 행리 속은 텅 비어 있었다. 그뒤 광흥주부(廣興主簿)가 되었으나 늙어 관직에서 물러나 안성에서 은거하였다. 1756년 첨지중추부사에 배수되고, 기로사(耆老社)에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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