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병자호란 때 김상용 등과 함께
강화성 남문에서 분사한
상원군 이세령의 후손입니다.
실록이나 관련자료들을 수소문해보아도
상원군 이세령이
남문루에서 분사했던 장면,
그 이전의 행적이나 기록이 없습니다.
훗날 정조 대에 공훈을 인정,
경기 관찰사를 시켜 사우를 건립해주긴 합니다만.
구체적인 공적사항이나
활동내용 등의 기록은 찾을 수가 없군요.
혹시, 귀 연구소에 관련 자료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있다면 열람이나 복사도 가능한지요?
감사합니다.
댓글 '3'
말씀하신 대로 조선실록의 정조14년(1790) 3월 19일조, 4월 11일조, 정조16년(1792) 7월 21일조 등에서 이세령의 자손에게 관직을 주게하고, 시호를 내려주고, 사우를 수리토록 하는 등의 기록이 있는데, 병자호란과 직접 관련된 사실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다만 [海東人物志] 상권 11쪽에 병자호란 때 김상용과 함께 강화 남문에서 순절하였다는 기술이 있는데, 대략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봉호는 상원군(祥原君). 자는 자안(子安), 호는 영천군자(靈川君子).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여러 경전과 역사서적을 탐독하였다. 광해군(光海君) 때에 이이첨(李爾瞻) 등이 폐모론을 논의했을 때에는 유독 이에 반대하기도 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동생인 진원군(珍原君)과 함께 혼전(魂殿)을 받들고 강화도에 들어갔다. 강화도가 함락되기에 이르자 선원 김상용에게 말하기를, ‘붙잡혀 치욕을 당하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고 하고, 함께 남문(南門)에 올라 분신(焚身)하였다. 모부인(母夫人)과 부인 조씨(曺氏)도 이 때 동시에 순절하였다.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이정훈
우선, 여러 자료들을 찾으시느라 애쓰신
관리자 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상원군께서 돌아가신 날짜가 족보에는 1637(丁丑) 정월 22일로,
김상용 순절 날짜와 같은 날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도 여러 차례 관련 단체나 자료들을 찾아보았지만
실록의 단편기록 외에는 아무런 단서를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아마추어인 저의 한계 때문이었을 겁니다.
'산성일기'나 '심양일기'도 검색해 본 적이 있는데
제 실력으로는 아무리 봐도 못 찾겠더군요.
해동인물지에 수록된 내용은
저희 후손들이 상원군에 관해 알고 있는 일반적인 내용입니다.
그 기록들 이상의 더 진전된 내용들이 없는 것이지요.
해동인물지도 상원군이 시호를 받을 때 작성된
시장(諡狀)을 인용한 듯 합니다.
시장의 내용은 족보에 전하고 있습니다.
'해동인물지'는 어떤 책인지도 궁금합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최근 발간된 책인것 같은데,
사서로서의 객관성이나 사실성, 발간배경 등
텍스트로서 신뢰할 수 있는 자료인지도 알고 싶습니다.
여러 연구활동으로 바쁘고 분주하실텐데
이렇게 저희 할아버님의 흔적을 찾아주시느라 애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또 뵙겠습니다.
1637년 1월 22일 강화부성 남문에서 선원 김상용이 순절할 때, 함께 순절했다고 전하는 분으로 김익겸, 권순장, 홍명형, 김수남 등이 있는데, 상원군(祥原君) 이세령(李世寧)은 기록에 보이지 않습니다.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의 상황을 전해주는 <강도록>, <병정록> 등에도 찾아지지 않고, 강화도의 지리지인 <강도지>, <강도부지>, <강화부지> 등에 실린 김상용의 강화남문 순절과정 관련 자료에도 상원군에 대한 기록은 찾지 못하였습니다. 좀더 찾아보겠습니다. 족보에 기록된 상원군이 돌아가신 해와 날짜는 김상용 순절 날짜와 같은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