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의 석회 생산에 대해서는, 1395년(태조4) 9-17 충청도 등의 사람을 징발하여 강화에서 석회를 굽게 했고(태조실록), 1617년(광해군9) 영건도감이 강화부에 석회 530여 석을 책정하여 배당하는 등 여러 차례 조선왕조실록, 비변사등록, 승정원일기 등에 보이고 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강화의 특산품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강화군 화도면 내리에 ‘석회골’이 있는데, 석회골은 두곡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예전에 석회를 구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마자리’는 석회골에 있는 석회를 굽던 가마가 있던 곳이라 합니다.
1932년에 간행된 <속수증보강도지>에서 일제시기의 석회 생산과 강화군 화도면 면지인 <마리지>의 석회 생산에 대해서는 자료가 찾아지는대로 보완하겠습니다.
강화도의 석회 생산에 대해서는, 1395년(태조4) 9-17 충청도 등의 사람을 징발하여 강화에서 석회를 굽게 했고(태조실록), 1617년(광해군9) 영건도감이 강화부에 석회 530여 석을 책정하여 배당하는 등 여러 차례 조선왕조실록, 비변사등록, 승정원일기 등에 보이고 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강화의 특산품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강화군 화도면 내리에 ‘석회골’이 있는데, 석회골은 두곡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예전에 석회를 구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마자리’는 석회골에 있는 석회를 굽던 가마가 있던 곳이라 합니다.
1932년에 간행된 <속수증보강도지>에서 일제시기의 석회 생산과 강화군 화도면 면지인 <마리지>의 석회 생산에 대해서는 자료가 찾아지는대로 보완하겠습니다.